
건축가 백지원을 만난 것은 일주일 중 가장 피곤하다는 목요일, 그것도 점심때가 한참 지난 오후였다. 멀리서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그는 졸음이 싹 달아나게 하는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대표이사도 아니요, 건축가도 아닌 ‘건축도 백지원’. 플래툰 쿤스트할래로 2009건축가협회상의 수상자로 낙점된 건축가 백지원이 아니던가. 2009년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젊은 건축가로 손꼽히는 그가 자신을 굳이 ‘건축도’라 칭하는 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에디터
이영진(yjlee@jungle.co.kr)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20대 후반부터 1인 스튜디오를 열어 밑바닥부터 온몸으로 경험하며 배워나갔다. 정말 끝내주는 모험심이라는 에디터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그땐 뭐든 다해보고 싶었다는 백지원의 눈동자가 아이처럼 반짝거렸다. 대기업의 특성상 디자이너에게 주어지는 작은 역할과 디자인 사무실의 열악한 환경에 불만을 느끼고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1인 스튜디오. 그는 디자인 사무실에 들어가 정상적인 수순을 밟았던 다른 동료들과는 또 다른 백지원만의 스타일을 구축해 나가게 된다. 지금 백지원이 한국 건축계를 이끌어갈 젊은 30대 건축가로 불리는 것에 누구도 이견이 없는 것은 그때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1인 스튜디오를 설립한 후, 백지원은 첫 클라이언트의 주택에 1년을 매달리면서 집을 짓는데 필요한 A부터 Z까지 모두를 경험한다. 이것이 다른 디자이너, 건축가와는 다른 백지원만의 무기이자 히든카드인 ‘경험’이다. 진정성 있고 직관적인 디자인을 위해 ‘경험’의 가치를 중요시한다는 그는 어떠한 숙제가 주어지면 그 공간의 콘텐츠가 되는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 일단 몸으로 느끼고, 겪는 것을 우선시한다. 그래서 백지원이 만들어내는 것은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조형물이 아니라 직관적인 공간이다.
“거짓말하는 소재는 싫습니다.” 그를 알만한 사람이라면 성북동 K씨 주택을 비롯한 공간들에 등장한 소재와 매치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을 것. 목재와 반대되는 물성을 가진 소재들이 어찌나 조화롭게 어우러졌는지 에디터는 내심 감동까지 하고 있던 터였다. 무언가 특별한 비법이 있을 줄 알았건만, 거짓말하는 소재는 싫다는 이 한마디에서 모든 것이 설명된다. 나무인 척, 메탈인 척 하는 필름 같은 눈속임 소재보다 물성 자체가 확실한 자연적인 소재를 사용하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그는 무엇보다 기본적 소재의 특성을 살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백지원의 솔직 담백한 성격을 고스란히 담은 공간은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다. 시간을 담아 나뭇결은 윤을 내고, 쇠 조각들은 녹이 슬면서 더욱 멋스럽다. 이 소재들을 대비시키는 노하우가 있느냐는 물음에 실제 조도에서, 또 환경에 의해 변하는 경우의 수를 생각해 샘플링을 많이 해보는 편이라고. 개별적으로 마음에 드는 것도 통합적으로 보았을 때는 상상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기에, 그는 샘플링 과정에 공을 들인다.
백지원에게서 플래툰 쿤스트할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비주류 문화 개발 사업을 하고 있는 플래툰(탐 뷔쉐만, 크리스토퍼 프랭크)과 친분이 있는 사이다. 백지원은 베를린에 있는 그들의 오피스 공간이 컨테이너라는 사실에, 그들은 백지원의 공간에 대한 철학에 매력을 느껴 플래툰 쿤스트할레의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게 된다. 공사는 넉 달 만에 끝났지만 건물 연구에 1년, 구조 설계에 석 달이 걸렸다. 플래툰 쿤스트할레는 기존의 화이트 큐브의 미술관이 담아내지 못했던 다양한 문화를 28개의 선박 컨테이너가 자유롭게 담아내고 있다. 백지원은 플래툰 쿤스트할레 최고의 강점을 경제성과 이동이 가능한 점으로 꼽는다. 플래툰 쿤스트할레의 서스테이너블한 컨테이너와 공간의 배치는 그의 경험주의적인 면모를 확실히 보여준다.
백지원은 플래툰 쿤스트할레에 연구, 설계 등으로 1년이 넘는 시간을 들이면서 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 수 있는 팀을 구상했던 것. 그 구상은 올해 5월 ‘얼반테이너’로 구체화되었다. 얼반테이너는 도시를 담는 유쾌한 그릇을 의미하는 ‘얼반+컨테이너’다. 백지원의 말을 빌리자면 콜럼버스, 마젤란처럼 도시를 탐험하며 숨은 스팟을 얼반테이너의 그릇으로 담아내 붐업시키고자 한다고.
얼반테이너에서는 마케터,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들까지 다양한 디자이너들이 수평적 구조로 일을 한다. 아트그룹 개념으로 설립한 회사이기 때문에 ‘누가 어떤 일을 잘할 수 있을까’만 생각한다는 것. 얼반테이너의 비전은 이 간단한 논리를 바탕으로 프로젝트의 양과 질을 모두 유지 관리함으로써 국내외에서 열심히 활약하는 것이다.
학원, 주택, 카페, 문화공간 등 다음에 선보일 어떤 분야일지 종잡을 수 없는 그에게 어떤 공간이든 모두가 매력적인 대상이다. 최근에는 가로수 길의 T룸에 참여했다는 말에 순간, ‘당신은 도대체 어떤 공간을 제일 좋아합니까’를 삼키고 백지원 식 공간의 뿌리는 어디냐는 뜬금없는 질문을 해본다. 모든 국민들이 문자를 쉽게 쓸 수 있게 하고자 했던 훈민정음 창제의 목적처럼 ‘연민’이 백지원 식 공간의 출발점이란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보다 나은 공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여 일반인들도 그 디자인을 향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사람이 그 공간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머무를 수 있게 하는 것이 그의 간절한 바람이다. 우문에 돌아온 현답이었다.
백지원을 인터뷰하는 내내 유쾌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탐닉은 그에게도 에디터에게도 즐거운 일이다. 아직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아서 최대한 많은 공간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그는 예나 지금이나 ‘건축도’의 자세이기 때문에 공무원을 상대로 허가를 받는 서류업무부터 선 하나를 긋는 디자인까지 허투루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인터뷰의 마침표를 찍었다. 명함에 적힌 ‘건축도’가 머릿속에 강렬한 느낌표로 남은 순간이었다.
아트그룹 개념으로 설립한 회사, 누가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아, 아트그룹이라!!!!! MY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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